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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전화 이야기

생명의 전화는?

호주의 시드니시 중앙감리교회 알렌 워커(Alan Waker) 목사에 의해 구성되어 탄생되었다.

생명의전화의 발단
알렌 워커 목사

알렌워커 목사는 자정이 가까운 늦은 밤 설교 준비를 하던 중 로이 브라운이라는 청년으로부터 전화를 받게 되었다. 청년은 큰 빚을 지게 되어 깊은 절망에 빠진 상태로 앞날을 걱정하며 괴로워하였고, 그의 이야기를 듣고 위로와 조언을 건넸지만 끝내 그의 죽음을 막을 수는 없었다.
한 생명의 죽음은 알렌워커 목사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거대하고 복잡한 군중속에서도 고독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들을 위해 도와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하고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고 그 고민의 끝에 해결의 실마리를 열어준 것은 바로 ’전화 벨‘ 소리였다.

생명의전화의 계기·태동

이후 알렌워커 목사는 또다른 전화를 받게 된다. 새벽 2시, 한 부인의 울음 섞인 목소리로 걸려온 전화한통을 받으며 한번도 본 적 없는 사람에게 자신의 불안한 마음을 털어놓은 것에서 전화상담에 대한 확신과 윤곽을 잡을 수 있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전화 한 대로 많은 사람의 슬픔과 불안한 마음을 경청하고 위로와 공감을 전달 할 수 있었고 전화선이 ’구원의 손길‘이 될 수 있음을 확신하는 계기가 되었다.

생명의전화의 시작·발전

생명의전화 설립을 위한 인원구성을 하며 1년간의 준비를 통해 시드니 사람을 중심으로 한 지역유지에 의해 10만달러의 기금을 마련하고 매스컴을 통해 개인적으로 기금을 모았다.
1962년 6월에는 제1회 전화카운셀러 훈련을 시작하였고 센터빌딩을 완공하며 10명의 직원을 임명했다. 자원봉사자 교육을 통해 150명의 등록자 중 120명을 카운셀러로 선발하여 전화상담을 시작하였고, 이웃들의 다양하고 수많은 어려움의 외침을 들어주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된 전화상담은 하루 4교대로 이어졌고 호주의 다른 도시들로 번져가 마침내 세계 각국으로 소개되기에 이른다.

한국생명의전화 운동의 발단

한국생명의전화운동은 이영민 목사의 사회봉사에 대한열정과 집념에 의해 시작되었다.
목사는 스위스 ’봇세이 연구원‘에서 개최한 ’교회의 미래‘라는 주제의 세미나에 참석 중 크리스마스를 프랑크푸르트에서 보내게 되었다. 그 때 H.가이슬러 목사가 안내하여 ’텔레폰실졸게(Telefonseelserge)라는 전화상담기관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여기서 사회봉사에 대한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고 한국에서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한국생명의전화의 구체화를 위해 이영민 목사는 귀국길 영국 런던에서 ‘사마리탄(Samaritans)’ 전화상담 단체의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활동을 둘러보고 자신의 특수 목회에 대한 신념을 더욱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1970년 4월 귀국한 이영민 목사는 기회가 될 때 마다 교회의 사회활동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사람들과 이야기나누며 많은 격려를 받았고, 이에 구체적 사업을 구상하게 되었다.

한국생명의전화의 태동
그 첫 단계

한국생명의전화의 태동 그 첫 단계로 조항록 목사를 위원장으로 하는 '아가페의 집' 사업추진회를 조직하고 1971년 1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OC)의 후원을 받아 세계교회협의의(WCC)에 '아가페의 집' 사업 보조 신청서를 보내 3만 5천불의 원조를 받게 되었다.
이사회에서는 전화상담을 위해 한국기독교회관 장소를 마련하는 한편 서울 무교동 다방을 운영하기로 하고 우선 1973년 6월 1일 '아가페의 집' 커피하우스를 개점하게 되었다.
그래서 방황하는 많은 청소년들에게 대화의 장소를 제공하여 삶의 기쁨과 보람을 느끼게 하고 서로의 만남을 통하여 바람직한 인간관계를 가질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가페의 집'은 서울시의 도시 재개발 사업으로 생명의전화 운동을 태동시킨 채 12월 결국 문을 닫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준비 작업은 '아가페의 집' 사업과 함께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새로운 생명력으로 무럭무럭 자라나 가시적인 결실을 맺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의
헌신적인 봉사

한국생명의전화의 시작은 많은 사람들의 헌신적인 봉사로 구체화 되었으며
1976년 8월 1일 정오 서울생명의전화는 '도움은 전화처럼 가까운 곳에'라는 표어를 걸로 한국기독교회관에서 역사적인 개통식을 가졌으며, 이것이 '한국생명의전화'의 모체가 되었다.
생명의전화는 개원 후 우리나라 전화상담기관의 효시로서 본격적인 자원봉사 운동을 시작하였고 이웃과 사회를 위한 봉사의 전범으로 자리 잡아갔다.

한국생명의전화의 발전

생명의전화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은 위기와 갈등, 자살기도 등의 복잡한 삶의 문제 해결에 도움을 받고 있으며,
이를 통해 생명의전화는 우리 사회의 정신건강을 보살피는 핵심적인 기관이 되었다.
특히 생명의전화 자원봉사 상담원들의 봉사활동은 크리스찬으로서 예수의 통합력을 바탕으로 한 특수성을 갖고 있지만, 포괄적 사역으로서 교회연합운동의 모범을 보이며, '하나님의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